이동할 수 있어야 권리도 작동한다
의료·직업재활·문화관광을 연결하는 장애인 이동접근성의 중요성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 장애인의 이동권은 흔히 버스와 지하철, 특별교통수단을 얼마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동접근성은 단순한 교통 편의의 차원을 넘어선다.
장애인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직업훈련을 거쳐 노동시장에 참여하며,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고 여행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리인 동시에 의료권, 노동권, 문화향유권과 같은 다른 권리를 현실에서 작동하게 하는 기반적 조건이다

이동 접근성은 다른 접근성 영역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적 접근성의 근간이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접근성은 개별 시설이나 서비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애인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먼저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진료정보를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어야 한다. 주거지에서 외부로 나올 수 있어야 하며, 보도와 횡단보도, 정류장과 역사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저상버스나 승강설비가 갖춰진 차량에 탑승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한 뒤 병원 입구와 진료실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접근 가능한 진찰대와 검사장비, 화장실, 수어통역이나 보완대체의사소통과 같은 의사소통 지원이 갖춰져야 실질적인 의료 이용이 가능하다.
이 과정 가운데 어느 한 지점이라도 단절되면 의료서비스 전체가 이용 불가능해질 수 있다. 병원 내부에 편의시설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더라도 병원까지 갈 수 없다면 의료접근성이 보장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있더라도 목적지 건물의 출입구나 내부시설에 접근할 수 없다면 이동은 완성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이동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단순히 공간을 통과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보탐색과 예약, 보행, 승하차, 환승, 건축물 진입, 서비스 이용이 연결된 하나의 연속된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동접근성은 다른 접근성 영역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적 접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기관, 학교, 사업장, 직업재활시설, 공연장과 관광지가 존재하더라도 장애인이 실제로 도달할 수 없다면 해당 시설과 서비스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자원이 된다. 이용 가능한 서비스란 단순히 공급된 서비스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접근하여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의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는 장애를 개인의 손상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장애는 개인의 건강상태와 물리적·사회적 환경이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나는 활동 및 참여의 제한으로 이해된다. 장애인권익 보호
동일한 신체적 조건을 지닌 사람이라도 접근 가능한 교통수단과 건축환경, 적절한 보조기기와 인적 지원이 제공되는 사회에서는 높은 수준의 독립생활과 사회참여가 가능하다. 반대로 이동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개인의 기능제한이 훨씬 더 큰 사회적 배제로 확대된다. 장애인의 이동문제는 개인의 신체적 한계라기보다 이동을 전제로 설계된 사회가 다양한 이동방식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이동접근성의 중요성은 의료영역에서 특히 선명하게 나타난다. 장애인은 지속적인 건강관리나 재활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료 필요가 높다고 해서 의료 이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별교통수단을 예약하지 못하거나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 진료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도착하기 어렵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석, 항암치료, 물리치료, 작업치료와 같은 의료·재활서비스는 한두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장기간 이용해야 하므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이동수단이 필수적이다.
이동수단이 불안정하면 정기검진이나 초기진료가 연기되고, 재활치료의 빈도가 줄어들거나 중단될 수 있다. 질환이 악화된 이후에야 응급실이나 입원치료를 이용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건강 악화뿐 아니라 더 큰 의료비용과 돌봄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동비용 자체도 장애인의 의료 이용을 제한한다. 교통비 외에도 동행인의 시간과 비용, 활동지원 공백, 장시간 대기로 인한 근로손실이 함께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저소득 장애인에게 이러한 비용은 필요한 진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 의료접근성을 개선하려면 병원 내부의 시설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 예약과 이동지원이 연계되어야 하고, 반복적인 치료가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정기배차나 우선예약과 같은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동이 매우 어려운 사람에게는 방문진료와 재택재활을 확대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기 위한 이동은 의료와 무관한 외부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일부로 다루어져야 한다.
직업재활과 고용에서도 이동접근성은 핵심적인 조건이다. 장애인 직업재활정책은 주로 직업평가, 직업훈련, 취업알선, 보조공학기기, 근로지원인, 직무조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장애인이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고 사업장 내부에 필요한 편의가 제공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사업장까지 출근할 수 없다면 고용은 지속되기 어렵다.
취업 과정은 이동의 연속이다. 직업훈련기관에 가야 하고, 상담과 면접 장소에 도달해야 하며, 취업 이후에는 매일 또는 정기적으로 출퇴근해야 한다. 특별교통수단의 운행시간이 근무시간과 맞지 않거나 예약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다면 장애인의 직업선택은 능력과 적성보다 이동 가능성에 따라 제한된다. 야간근무, 교대근무, 출장, 외부교육과 회의에 참여하기 어려워지고, 이동 지연으로 인한 지각과 결근이 업무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장애인은 자신이 원하는 직무보다 통근이 가능한 직무를 선택하게 된다. 사업장의 접근성이나 고용주의 태도뿐 아니라 거주지와 사업장 사이의 교통조건이 사실상 취업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동지원의 부족은 직업훈련 참여를 제한하고, 취업기회를 줄이며, 낮은 소득과 장기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낮은 소득은 다시 개인 교통수단이나 유료 이동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을 낮춰 취업 선택권을 더욱 축소한다.
그러므로 출퇴근 지원은 직업재활의 부수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핵심적인 고용지원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취업이 확정된 장애인에게 교통비, 접근 가능한 차량, 동행지원과 보조기기 운송을 신속하게 제공하고, 이직이나 근무지 변경에도 지원이 유지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원이 특정 기관이나 사업장에 종속되기보다 장애인 개인을 따라 이동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근무시간 조정과 유연근무, 원격근무 역시 활용할 수 있지만, 원격근무가 이동환경 개선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어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과 여러 근무형태 가운데 재택근무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문화와 관광 역시 이동접근성과 분리할 수 없다. 문화생활과 관광은 종종 의료나 고용에 비해 부차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이는 장애인의 삶을 생존과 보호의 문제로만 축소하는 시각이다. 공연과 전시, 스포츠, 여가와 여행은 개인의 정체성과 관계 형성, 정신건강, 삶의 만족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화향유와 관광은 일부 사람에게 제공되는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사회참여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관광접근성은 특정 관광지에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접근 가능한 객실 몇 개를 마련하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관광은 정보탐색과 예약, 출발지에서 교통거점까지의 이동, 장거리 교통수단 이용, 도착지 내 이동, 숙박, 음식, 관광시설과 화장실 이용이 연속적으로 연결된 경험이다.
접근 가능한 숙박시설이 있더라도 역이나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할 수 없다면 이용하기 어렵다. 관광지 입구까지 도착했더라도 내부 이동로가 단절되어 있거나 접근 가능한 화장실과 휴게시설이 없다면 체류와 활동은 제한된다.
정보의 부족 또한 중요한 장벽이다. 관광정보에서 단순히 ‘장애인 이용 가능’이라고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이용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출입구의 폭과 경사도, 승강기의 규격, 휠체어 좌석과 화장실의 위치, 수어·자막·음성해설의 제공 여부, 보조기기 대여 가능성 등 구체적이고 검증된 정보가 필요하다. 접근성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부족하면 장애인은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장벽을 만날 위험도 커진다.
장애인의 관광을 일회성 체험행사나 단체 프로그램으로 제한해서도 안 된다. 장애인은 보호자나 기관이 정한 일정에 따라 이동하는 수동적 복지대상이 아니라 여행의 목적지와 일정, 동행인과 활동을 스스로 선택하는 관광소비자이자 시민이다. 무장애 관광정책은 개별 관광지의 편의시설 설치를 넘어 교통거점과 숙박시설, 음식점, 문화시설, 관광지와 공공화장실을 연결하는 지역 단위의 접근 가능한 관광경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동접근성의 부족은 의료, 고용, 문화영역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불편이 아니다. 그 영향은 서로 연결되고 누적된다. 필요한 의료와 재활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면 건강과 기능이 악화될 수 있다. 건강 악화는 교육과 직업훈련, 취업 참여를 어렵게 하고, 낮은 고용률과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소득이 낮아지면 접근 가능한 주거와 교통수단, 보조기기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경제적 어려움은 다시 의료서비스와 문화·관광 참여의 포기로 이어지고, 사회적 관계와 정보접근의 기회를 축소한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개인의 소극성이나 참여 의지 부족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채 장애인의 낮은 사회참여를 개인적 선택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책과 사회환경의 책임을 장애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동제약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판단하면 사회적 장벽은 가려지고 기존의 불평등은 반복된다.
장애정책이 발전한 국가들은 이동문제를 장애인과 가족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사적 부담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교통과 공공시설의 접근성을 의무화하고, 합리적 편의와 개인별 지원을 통해 출퇴근과 사회참여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지원한다. 일부 국가는 기관이 장벽을 사전에 발견하고 제거하도록 접근성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의무화한다. 이러한 정책들의 공통점은 장애인의 이동을 예외적인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와 사회기반의 문제로 본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이동정책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이 확대되었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동정책의 성과는 여전히 차량 대수나 도입률과 같은 공급지표를 중심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접근 가능한 차량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장애인이 원하는 시간에 그 차량을 이용해 필요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앞으로의 정책은 특별교통수단의 공급을 확대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장애인의 생활기회를 얼마나 보장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원하는 시간대에 이동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지, 대기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광역이동과 환승이 가능한지, 의료 예약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는지, 출퇴근 가능한 지역과 일자리가 얼마나 확대되었는지, 문화와 관광 참여가 실제로 증가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특별교통수단에 장애인의 모든 이동을 의존시키는 구조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의 보편적 접근성을 확대하면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사람에게 특별교통수단과 바우처택시, 접근 가능한 일반택시, 동행지원을 결합하는 다층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별교통수단은 접근하기 어려운 대중교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장애인을 별도의 운송체계에 분리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편적 교통체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행정구역에 따라 이동이 단절되는 문제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병원과 직장, 학교, 문화시설은 거주하는 지방자치단체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마다 다른 이용기준과 예약체계, 운행범위는 장애인의 실제 생활권을 반영하지 못한다. 광역 단위의 통합예약과 요금체계, 차량정보 공유와 지방자치단체 간 비용정산 체계를 마련하여 행정구역을 넘어선 이동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동정책은 의료, 직업재활, 문화관광정책과 연결되어야 한다. 의료기관 예약과 이동지원이 별도로 운영되고, 취업지원과 출퇴근 지원이 분리되며, 관광지의 편의시설 개선과 지역교통정책이 서로 연계되지 않는다면 장애인은 제도 사이의 공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정책의 통합은 행정기관 간 협력이라는 추상적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 한 번의 신청과 조정을 통해 필요한 이동과 목적지 서비스를 연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의 이동접근성은 여러 접근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이동은 정보와 건축환경, 의료와 재활, 고용과 소득, 문화와 관광을 연결하는 기반적 접근성이다. 이동이 단절되면 다른 권리도 함께 단절된다. 반대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동이 보장되면 의료 이용과 고용 참여, 사회적 관계와 문화생활의 기회가 동시에 확대된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필요한 때 치료받을 권리,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할 권리, 문화를 향유하고 여행할 권리, 사람을 만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현실로 만드는 일이다. 이제 장애인 이동정책의 질문은 “접근 가능한 차량을 얼마나 공급했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 필요한 의료와 직업, 문화와 관광의 기회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동할 수 있어야 권리도 작동한다. 장애인의 이동접근성을 사회적 비용이나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삶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공공 인프라로 인식할 때, 장애정책은 분절된 지원을 넘어 실질적인 사회통합의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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