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수어 희화화 논란으로 본 한국수어법의 무력함과 미디어 가이드라인 시급성
최근 SNS에서 수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청인 인플루언서 계정이 유행어 밈(Meme)을 억지스럽게 직역해 수어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계정은 농인 특유의 음성(데프 보이스)을 유머 소재처럼 흉내 내는 등 명백한 ‘언어 훼손’과 ‘문화적 모욕’을 일삼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농인 당사자들에게 도리어 수어의 의미를 가르치려 드는 오만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로 인해 수어를 모국어이자 제1언어로 사용해 오는 대한민국 농인들의 분노가 미디어를 향해 다시금 폭발했다. 몇 년 전 농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대중매체의 수어 희화화 사건’의 악몽이 오늘날 미디어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나라와 함께 한국어를 빼앗겼던
민족적 아픔과 역사적 상처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모국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며 정체성의 상실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정작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약한 존재들이 숱한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눈물로 지켜온 ‘수어’라는 또 하나의 모국어를
우리는 왜 이토록 무참하게 대하는가?
”
수어는 단순히 단어와 손짓을 일대일로 끼워 맞추는 기계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농인들의 혼과 피, 눈물이 담겨진 애환의 언어이자 고유한 문법과 문화적 맥락을 지닌 독립된 언어다. 같은 한국인에게조차 수십 년간 무시와 편견을 받아왔던 농인들은 끈질긴 투쟁 끝에 지난 2016년, 마침내 ‘한국수어법’을 제정하며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독자적인 언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SNS 속 수어 콘텐츠들은 이러한 법적 취지와 당사자성을 철저히 비웃고 있다. 얄팍한 조회수와 유행에 맞춰 가볍게 조립하고 소비하는 장난감으로 수어를 전락시키고 있다.
청인 제작자들이 교육학적·언어학적 전문성도 없이 잘못된 수어를 전파하고, 현장의 농인 강사들과 교수들이 그 잘못 습득된 수어를 교정하느라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 왜곡된 현실이 반복된다.
이제는 미디어 속 무분별한 수어 오용과 희화화를 개인의 자율성이나 단순한 소통의 해프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한국수어법의 정신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미디어 수어 콘텐츠 가이드라인’ 수립이 시급하다. 공공 미디어뿐만 아니라 1인 미디어와 SNS 플랫폼 내에서도 농인 당사자의 참여와 검수가 제도화되어야만 이 폭력적인 언어 훼손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