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활용, 장애인의 삶을 지키는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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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활용, 장애인의 삶을 지키는 새로운 패러다임

지방 빈집 정책, 시선 옮겨 독거장애인 돌봄과 지역사회 정착 복지정책 설계

장애인이 지역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



 

빈집 활용, 장애인의 삶을 지키는 새로운 패러다임.(AI 생성 이미지) ©김양희


[에이블뉴스 김양희 칼럼리스트] 지방에 가면 빈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이제는 너무 익숙하게 듣는다. 골목마다 사람이 떠난 집들이 늘어나고, 오래 방치된 집들은 마을의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정작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비어 있는 집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돌봄’이다.

특히 지방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현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활동지원 인력은 부족하고, 병원과 복지기관 접근은 어렵다. 가족들은 도시로 떠났고, 홀로 남은 중증 장애인이나 고령 장애인들은 지역 안에서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실제로 지방의 오래된 주택이나 낙후된 주거환경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많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재난·질병·범죄·고독사 위험에 동시에 노출된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빈집 문제를 부동산 관점에서만 바라보려 한다. 활용 방안이라고 해봐야 관광, 임대, 귀촌 정도의 이야기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방의 빈집 정책이 진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돌봄과 삶의 기반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 복지 관점에서 본다면, 빈집 활용 정책은 단순한 건물 정비 사업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복원하는 중요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지금 지방에는 시설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장애인들이 많다. 동거인이 고령이 되거나 사망하면 갑자기 시설 입소 위기에 놓이는 경우도 흔하다. 지역 안에서 살아가고 싶어도 마땅한 자립주택이나 지원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빈집 정책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방치된 빈집을 장애인 지원주택이나 공동생활가정, 자립생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활동지원, 응급안전 시스템, 지역 돌봄 서비스와 연결된 생활 기반으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단순한 주거 정책을 넘어선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복지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홀로 사는 독거 장애인들에게는 이런 공간이 생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동권 부족으로 병원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거나, 사회적 관계 단절 속에서 우울과 고립이 깊어지는 사례도 많다. 결국 지역 안에 연결망이 없다는 것은 곧 위험으로 이어진다.

빈집을 활용한 장애인 지원 거점은 이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작은 공동체 공간 안에서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지역 복지기관과 연결되며, 필요할 때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생각보다 거대한 곳이 아니라, 이미 비어 있는 동네의 작은 집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정책이 지역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은 결국 노인도, 아동도, 비장애인도 함께 살아가기 좋은 지역이 된다. 경사로 하나, 응급 연결 체계 하나, 공동 돌봄 공간 하나가 결국 모두의 안전망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장애인조차 살아갈 수 없는 지역은 결국 누구도 오래 머물 수 없는 지역이 된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다. 오래된 빈집은 개보수 비용이 크고, 접근성 개선도 필요하다.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안전 설비를 갖추려면 예산도 들어간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비용으로만 볼 수는 없다. 지역사회 안에서 한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일은 결국 시설 수용이나 사회적 고립 이후 발생하는 더 큰 비용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방의 부동산 정책은 서울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서울이 공급과 가격의 문제라면, 지방은 관계와 돌봄의 문제에 더 가깝다.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누구를 위해 다시 살려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빈집 정책은 단순히 “남는 집 활용” 정도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역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다시 삶 안으로 연결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특히 장애인에게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결국 비어 있는 집을 다시 채운다는 것은 건물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에서 사라져가던 돌봄을 다시 채우는 일이고,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당신은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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